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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활동가의 소감 VOV 2014 7월호 자원활동가 소감 - 다문화를 한폭의 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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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07회 작성일 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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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1960년대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마땅하지 않아 가족의 누군가를 여유있는 다른 집으로 보내버리는 일, 서독에 광부로, 간호사로, 중동에 노동자로 가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에 젖어 온갖 수모를 겪으며 보낸 세월이 수 십 년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군인으로 보내어 졌으며, 일본, 미국으로 노동자로 가서 말할 수 없는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리고 어린 소녀들은 방직공장에, 어린 소년들은 열악한 조건의 기계공으로 밤을 새며 일벌레처럼 일을 했었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어머니도 방직공장의 직공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한 직장에 일이 밀려서 삼 교대를 하며 일을 해야했기 때문에 밤에 일을 하고 아침에 집에 와서 낮에 잠을 자고 저녁에 다시 직장으로 일을 하러가곤 했었다. 일곱 살 어린 딸을 혼자 집에 둔 채로, 그 딸이 바로 나였다.

온 국민이 어렵게 허리를 졸라 메고 역경을 헤쳐갔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와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나 결혼 이주 여성들을 보면 그 시절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우리들의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싫어하는 직장을, 한국 여자들은 선호하지 않는 한국의 노총각들을, 그들은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 아주 유능한 엘리트들이며, 각 개인마다 자기들의 가족을 책임져야겠다는 신념에 열 두 시간 이상의 배나 비행기를 타고 미지의 땅, 대한민국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이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사람들이며 지구인으로 존중 받을 권리가 있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 ‘다사랑 자원봉사’ 단체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2. ‘다사랑 자원봉사’ 소개

2014년 2월 부산에 소재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주최한 외국인을 위한 자원봉사 연수를 받은 연수생들, 즉 같은 꿈을 가진 퇴직공무원들이 같은 목적을 갖게 되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보다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인들과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모였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생활을 30년 이상 열심히 근무한 27명의 퇴직공무원들은 각자 자신들의 관심분야에 따라, 한국어 교육, 다문화 도서 도우미, 한국어 교정, 영어 통번역, 외국인 상담사, 외국인 병원출입이나 기타 도우미 등으로 나뉘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단체를 설립한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아 많은 사례를 보여 줄 수는 없으나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해 안내하고자 한다.

3. 봉사활동 사례
(1)귀화시험 도움

한국 귀화 시험을 준비하는 조선족 출신의 20대 청년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이 청년은 40대의 아버지와 둘이 생활하고 있으나 집안은 매우 궁핍하였다. 벽에는 곰팡이가 보이며, 조그만 방 한 칸에 하반신이 마비된 아버지와 둘이 생활하고 있었다. 한글을 가르쳐 주려고 가니, 없는 형편에도 과자 부스러기를 내 놓으며 자기들은 먹지않고 도와주는 선생님에게만 권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많은 시간을 내어서 가르쳐 주고 싶고 빨리 귀화시험에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2)재일한인할머니 전시회 도움

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 할머니들이 자신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부산의 민주공원에 전시하려고 했다. 민주공원에서 우리 다사랑 봉사단 회원들이 그 할머니들의 전시를 도와 주었다. 일본에서 살면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 할머니들은 우리 도우미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했다. 우리 도우미들도 정말 보람된 활동을 한 것 같았다.

(3)한국어 교육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근로자들과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외국인 여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한국에 온지 구년이 넘었는데도 한국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하는 페루의 아주머니도 있었다. 한국인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별 말을 하지 않고 저녁 먹고 씻고 자기가 바쁘며, 초등학교 일학년 인 딸아이는 친구들과는 말을 잘하면서 엄마하고만 대화가 안 통한다고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네팔에서 온 청년은 한국어를 제법 잘 구사했다. 일요일 마다 한국어 교육하는 교실에 와서 초급, 중급반에서 모두 학습을 하였다. 그리고 당구, 탁구를 잘하며, 자전거도 타고 싶다고 했다. 참 밝고 명랑한 청년이었다. 그리고 일곱 명의 고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했다. 정말 책임감이 강한 청년이다.

스리랑카에서 온 스님은 누른색의 승복을 입은 채 한국어 교실에 들어왔다. 부산의 명지동에 있는 청량사 절에서 거주한다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이며 교실에서는 바로 옆에 앉은 중국에서 온 한국말이 매우 서투른 예쁜 중국여자에게 잘 가르쳐 주면서 한국어 학습에 열심이다.

베트남의 귀여운 20대의 여자들은 다섯 명, 서로 다정하게 짝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학습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너무 춥고 무서웠다고 했다. 지금은 한국에 아주 적응을 잘 하고 있다.

(4)노동 임금 받아 주기

한 베트남 20대 남자에게 5개월이나 임금이 체불되어 임금을 주지 않는 고용주를 노동부에 신고를 하여 임금과 기타 가산임금을 받게 해 주었다.

4. 맺으며
존경 받고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 권리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누릴 권리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기를 원하며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쾌적한 작업환경, 적당한 노동시간, 병원을 이용할 권리, 취미생활을 할 여유와 공간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각 국가의 문화를 존중해 주며 의식주의 문화 차이 등을 이해하며 인정해 주어야 한다. 다양한 색깔과 형태가 모여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되듯이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한데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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